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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3. 박근혜와 정윤회
  • 민족일보
    2015.02.04 10:26:12
  • 3. 박근혜와 정윤회


    [기획] 박근혜·정윤회<정권> 백서 

    산케이신문 2014.8.3 <세월호참사당일 사라진 7시간>보도, 세계일보 2014.11.28 <정윤회 비선실세의혹>보도이후 <박근혜·정윤회게이트>의 전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가의 풍문으로만 떠돌던 박근혜·최태민·최순실의 관계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21세기민족일보와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공동기획 박근혜·정윤회<정권> 백서를 공개한다. 박근혜<정권>의 본질과 수많은 <참사>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각종매체보도를 종합했다. _편집자주

    <연재순서>
    1. 박근혜와 최태민
    2. 박근혜와 최순실

    3. 박근혜외 정윤회



    정윤회의 등장

     

    정윤회가 박근혜와 연을 맺은 건 최순실을 통해서다.

     

    스스로 비선실세의혹을 부인했지만 정가와 언론계에선 박근혜의 정계입문이후 줄곧 비선조직을 이끌며 막후권력을 행사했다는 합리적 의혹이 만연해있다.

     

    전직정보원(국가정보원)요원에 의하면 그는 최태민의 운전기사출신으로 종교적으로 최태민을 따르다가 최순실과 결혼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한국일보, 2014.12.6)

     

    26세때인 1981.8 대한항공보안승무원으로 입사한 뒤 1980년대후반 퇴사했고 이후 5년가량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대한항공재직시절 둘째부인으로 알려진 최순실을 만나 1995년에 결혼, 승마선수인 딸(18)은 1996년 10월말에 태어났다.(한겨레, 2014.12.2)

    1994년 당시 39세인 그는 (주)얀슨을 창업하며 대표이사를 맡았다.

     

    회사운영은 최순실이 2005년까지 맡았고 현재까지도 사내이사로 등기돼있다.(한겨레, 2014.12.2)

     

    최태민사망후 1998.4 박근혜는 대구달성군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때부터 그는 비서실장으로 2004년까지 최측근에서 박근혜를 보좌했다가 최태민의 사위라는 사실이 알려진 2007년 공식적으로 정계를 떠났다.

     

    특히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창당후 총재로 취임하자 총재비서실장을 맡은 것은 단순한 관계가 아님을 말해준다.

     

    2004년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2007년대선후보경선당시 박후보 비선조직 <삼성동팀>을 이끌었고 2012년 박근혜대선캠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2012.7.17, 미디어투데이, 2012.8.22, 시사위크, 2014.9.26)

     

    한 여권관계자는 박당시후보가 대통령출마를 결심한 지난 2006년 독일방문당시 그동안 잠적한 정윤회가 동행했고 이정현당시비서와 비선문제로 크게 싸웠다고 전했다.(주간경향, 2014.12.16)

     

    박근혜가 2007년대선후보에 출마할 당시 박후보·최순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이후 그가 여전히 후보캠프를 진두지휘했다는 제보가 있다.(CNB저널, 2007.7.2)

     

    당시 <박근혜파일>에 대해 알고있는 또다른 전직정보원요원은 <정윤회씨는 2007년대선때 박근혜당시후보의 핵심측근으로 활약했다. 정씨를 통해 박후보를 만나는 이들이 있었다. 정씨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박후보에 있어 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고 확인했다.(주간한국, 2014.12.6)

     

    2014.4.11총선 공천과정에서도 정윤회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문고리권력>으로 불리는 박후보보좌진도 직접 짰다고 전해진다.(한겨레, 2012.7.17, 오마이뉴스, 2012.10.23)

     

    박근혜주변을 오랫동안 조사해온 정치권인사는 <정씨가 2004~2005년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것은 이후 박후보의 대선준비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며 <정씨가 <강남팀>을, 홍윤식이 <마포팀>을 이끌며 대선을 준비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2012.10.23)

     

     

    인사개입

     

    2014.11.28 세계일보가 <정윤회 비선실세의혹>을 보도한후 그가 박<정권>의 비선실라는 의혹보도가 줄을 이었고 국정을 농단한데 대한 여론의 비난이 거세졌다.

     

    박<정권>초반부터 정윤회는 <숨은 실세>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문고리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이재만총무비서관, 정호성제1부속실장, 안봉근제2부속실장이 그의 눈과귀, 손과발이 돼 국정을 도맡아한다는 이야기가 여권내에서 터져나왔다.(시사인, 2014.12.1)

     

    <증권가찌라시>로 떠돌던 <김기춘교체설>은 실은 정윤회가 자신의 비선라인을 동원해 퍼트린 루머라고 보도됐다.(세계일보, 2014.11.28)

     

    세계일보에 따르면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된 박관천경정이 2014.1.6 <<청와대비서실장교체설> 등 관련 VIP(박근혜)측근(정윤회)동향>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문건에는 <정씨가 지난해(2013년) 10월부터 매월 2차례씩 소위 십상시(중국후한말 전횡을 일삼은 환관무리)라 불리는 박<대통령>측근(청와대내부인사6명, 정치권인사4명)들과 만났으며 김기춘비서실장교체설을 퍼트리도록 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시사인, 2014.12.1)

     

    또 <이정현은 근본도 없는 놈이 VIP 1명만 믿고 설치고 있다>며 이정현당시청와대홍보수석을 비난하면서 <VIP의 눈밖에 나기만 하면 한칼에 날릴 수 있다. 안비서관이 적당한 건수를 잡고 있다가 때가 되어 내(정윤회)가 이야기하면 VIP께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정윤회가 지시했다고 적혀있다.(세계일보, 2014.12.7)

     

    2014.10 정보원 이헌수기조실장의 사의파동과 관련해 정작 이병기정보원장은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실장에게 사표를 종용하고 논란이 커지자 <1년만 더하라>며 사의를 반려한 주체가 이병기정보원장이 아니라 비선이라는 것이다.

     

    2014.6 문창극전국무총리후보자 자질논란이 빚어졌을 때도 어떤 비선권력이 그를 추천했는지가 논란이 됐다.(경향신문, 2014.11.29)

     

    보도된 문건중 검은색으로 가려진 부분에는 정윤회가 이른바 <십상시>와의 회동에서 <이정현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비리나 문제점을 파헤쳐서 빨리 쫓아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프레시안, 2014.12.7)

     

    정윤회·최순실부부가 정부부처 감사활동과 인사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과정에서 박<대통령>이 해당부처 세부인사까지 직접 챙겼다는 증언도 나왔다.(한겨레, 2014.12.3)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몰라도 수첩을 꺼내들고 문체부장관에게 국장이름, 과장이름을 호명하면서 <이 두사람 아주 나쁜사람이라 하더라>는 말로 교체를 지시했고, 얼마후 다시 장관에 전화를 걸어 왜 아직도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을 했다>고 증언했다.(뉴스타운, 2014.12.06)

     

    그의 딸이 출전한 승마대회에서 1등이 아닌 2등을 한 것과 관련해 승마협회에 감사관들이 들이닥친 사건이 발생한 것도 박<대통령>의 직접 언급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체육관광부관계자는 <당시 승마협회관련 감사지시와 인사야말로 (정윤회씨 부부가 국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한겨레, 2014.12.8)

     

     

    <문고리3인방>·<십상시> 배후

     

    <문고리3인방>과 <십상시>의 배후가 정윤회라는 것은 정가의 정설이다.


    <문고리4인방>(안봉근·이재만·정호성·이춘상(2012년사망))을 매개로 그가 박<대통령>과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건 오래전부터다.(한겨레, 2014.12.2)

     

    1998년 15대국회보궐선거에서 박근혜후보의 당선후 현재의 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박의원곁에 두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정윤회다.(중앙일보, 2014.12.15)

     

    청와대안팎에서는 <3인방이 사실상 <수석위의 비서관>역할을 하고 있다>, <인사와 정책 등 청와대의 모든 업무는 3인방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말들이 오르내렸다.

     

    또 <3인방이 경제라인이나 경찰·군 인사에 입김을 행사한다>, <정권초 공기업감사 등에 3인방중 일부가 민 인사들이 줄줄이 임명됐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는다.(한국일보, 2014.12.3)

     

    참사당일 국회에 출석한 김기춘비서실장은 박<대통령>의 <사라진 의문의 7시간>동안 행적에 대한 박영선새정치민주엽합의원의 질의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김기춘이 청와대내 2인자가 아니라 정윤회와 <문고리3인방>이 사실상 실세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억게 됐다.(미디어오늘, 2014.10.15)

     

    박정경의 문건에는 <정윤회씨가 지난해(2013년) 10월부터 매월 2회정도 서울강남의 모처에서 십상시멤버들을 만나 VIP(대통령)의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제시했다>고 적혀있고 구체적으로 김실장교체문제를 논의했다고 돼있다.(국민일보, 2014.12.8)

     

    이와 관련 새누리당 이재오의원은 <지금 누가 실세냐. 문고리3인방·정윤회란 사람이 실세다. 전부 몰려들지 않나.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전부 기라고 하지 않나.>고 일갈했다.(오마이뉴스, 2014.12.9)

     

    실제로 청와대안에서는 3인방이외엔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아는 참모가 거의 없고 <대통령>이 여당의원을 비롯한 외부인사와의 접촉기회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문고리3인방>으로 힘이 쏠리는 구도가 됐다.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대통령>과의 독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이들을 일컬어 <문고리권력>이라고 부른다.(한국일보, 2014.12.3)

     

    <문고리3인방>중 1인인 이재만과 연락나눈 사실도 드러나 의혹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문건작성자인 박경정의 당시 직속상관 조응천전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은 정윤회가 2014.4 이재만과 연락했다고 폭로하면서 2014.7월 국회운영위에서 <2003년인가, 2004년 정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이재만의 발언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정윤회는 <조응천전비서관을 만나려고 했는데 연락이 없어 이재만보좌관에게 만나게 해달라고 연락한 적이 딱 한번 있다>고 인정했다.(매일경제, 2014.12.2, 서울신문, 2014.12.5)



    <사라진 7시간>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의 초점은 박<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정윤회와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다.


    검찰은 2014.4.16 <세월>호침몰당일 박<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보도한 산케이신문서울지국장을 외신탄압이라는 국제적 망신까지 무릅쓰고 법정에 세웠다.(프레시안, 2014.12.12)


    산케이는 2014.8.3 박<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하루중 7시간의 소재가 전혀 파악되지 않아 정권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태로 번졌다고 보도했다.(산케이신문, 2014.8.3)


    수백명이 수장되는 순간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7시간동안 비서실장조차 연락이 두절된 상황은 어떤 무책임한 정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미디어오늘, 2014.10.15)


    김실장의 국회답변에서 불거진 참사당일 박<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논란에서 정윤회가 등장하는 등 의혹이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주간경향, 2014.12.16)


    주목되는 것은 정윤회가 <세월>호참사당일 행적에 대해 진술을 바꿨다는 점이다. 


    2014.8월 1차검찰조사에서 <4월16일엔 서울 강남의 집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이 재확인하자 <평창동에서 (역술인이자 한학자인) 이아무개씨를 만나고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가 진술을 번복한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한겨레, 2014.12.2)


    산케이는 <사라진 7시간>의혹에 대해 김실장답변과 조선일보칼럼 등을 소개한뒤 <박근혜의 사생활, 즉 박의 남자관계일 것이라는 소문들이 일고 있다>며 박<정권>의 레임덕은 서서히 시작됐고 <대통령>의 남자문제로 정권이 통째로 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뉴스프로, 2014.8.4)


    여기에 2014.5초 정윤회와 최순실이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더 <드라마틱해졌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두사람의 이혼을 정윤회가 자녀양육권과 재산을 모두 넘겨주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중대한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냐>, <법적으로는 이혼했지만 사실상 위장이혼이 아니냐>는 2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가 어떤 중대한 비밀을 함구하는 대가로 모든 것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둘의 이혼후에도 여전히 그가 최순실의 재산으로 생활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것이다.(한겨레, 2014.7.14, 선데이저널, 2014.7.20)



    통째로 흔들린 <정권>


    2015.1.5 검찰은 <정윤회 국정개입사실 무근>이라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의 <정윤회문건>수사결과에 대해 국민59%가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주요지지기반인 보수층조차 급격히 이탈한 결과다.(미디어오늘, 2015.1.9)


    한 검찰고위직출신 변호사는 <수사의 첫단추를 잘못 꿴 것으로 보인다. 정씨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 상황이지만, 한꺼풀만 벗겨서 보면 공직자도 아닌 사람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것이 이 사안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한겨레, 2014.12.7)


    정작 정윤회와 그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은 전무했다는 점은 그만큼 검찰이 현직<대통령>과 직접 관련된 인물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인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각종매체보도와 합리적 의혹들을 종합해보면 박근혜<집권>이후 한번도 끊이질 않은 <인사참사>, 하루하루가 생지옥과 다름없다고 비판하는 <민생참사>, 언제어디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남북관계참사>, 수백명을 수장시킨 <<세월>호참사>, 통일진보단체와 인사, 종교인까지 공안탄압하는 <민주주의참사> 등 수많은 특대형<참사>들의 근본원인이 바로 <박근혜·정윤회게이트>가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1972~74 <닉슨게이트>를 책임지고 2년여만인 1974.8.9 닉슨미대통령은 물러났다.


    닉슨처럼 박<대통령>도 스스로 퇴진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20%대로 추락한 지지율이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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