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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 민족일보
    2014.12.25 01:43:29
  • 죽음
     
     
    죽음도 급수가 있다. 같은 삶을 살았다면 어떤 죽음인가로 그 가치가 달라진다. 인류사를 총화해보면, 역시 적들, 나쁜놈들에게 죽는게 가장 값지다. 얼마나 두려우면 죽였겠는가. 계급사회에서 그 사람의 가치는 그 적들이 제일 잘 안다. 감옥으론 안된다며 죽여버릴 때, 민중은 가장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가장 크게 분노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그 다음이다. 대의를 호소하며 맞는 죽음이다. 일하다 죽는 경우는 어떠한가. 자기몸은 자신이 가장 잘안다. 여기서 한발 더 내딛다간 살기 어렵다고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다 맞는 죽음이다. 이 경우의 죽음이란 곧 순절과 다름이 없다. 적들 손에 죽진 못하더라도 적들과 투쟁하다 맞는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도 예고없이 온다. 죽음도 봐주는 법이 없다. 죽을 준비가 돼 있지않으면 죽는 순간에 동요할 수 있다. 삶에 미련이 남는 이유는 죽을 준비가 안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을 대신할 동지들을 키우는 일이다. 그런 동지들이 있다면 결코 죽음이 두렵지않다. 내가 살아 끝내지못한 일을 동지들이 남아 해내리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 좋은세상을 앞당겨 그만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떠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싸우다 적들 손에 죽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희남의장님은 그래서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적들이 두려워 피했다. 하여 그다음의 길을 택하셨다. 그분 생각이 간절해지는 때다. 
     
    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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