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일진보의 요람 - 용정중학교(옛대성중학)


용정중학교는 일제강점기시절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 위치한 학교로 일제의 탄압과 착취를 피해 이주해온 조선인들에게 근대교육을 실시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항일투사를 육성하는데 주력해 민족해방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다.

20세기초 용정지역에는 광명∙은진∙대성∙동흥∙명신여고∙광명여고 등 민족사립학교가 연달아 세워졌고 이후 역사의 변천과 함께 6개의 중학이 합병되면서 1946년 용정중학교가 됐다. 항일민족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1917~1945)가 바로 용정중학의 전신인 광명중학출신이다. 윤동주시인이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대성중학이란 이름으로 당시 민족주의교육의 산실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해냈다. 

학교건물은 신관과 구관이 있는데, 구관건물앞에는 윤동주의 <서시>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고 그 주변에는 시인의 일편단심을 기리는 소나무들로 교정이 꾸며져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올곧이 걸어가다 항일민족사상범 혐의로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됐던 시인은 이름모를 생체실험 주사를 맞고 1945년 2월16일 28세의 나이로 옥사한다. 시인의 숭고한 정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체관람을 온 청소년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기만 하다. 

구관건물 2층에 있는 사적전시관에는 윤동주시인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항일청년 송몽규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늦봄 문익환선생 등의 활동들이 기록돼있으며 1900년대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용정과 주변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사료들, 안중근의사의 의거와 김일성주석(당시 호칭은 <장군>)의 항일무장투쟁 기록들, 연변에서 벌어졌던 3.13만세운동 등을 역사관에 있는 해설사가 친절히 설명해준다.

이곳에서 뜻깊게 기억해야 할 위인이 한분 더 있다. 바로 보재 이상설선생이다. 이상설(1871∼1917)선생은 충북 진천 사람으로 24세(1894년, 고종 31년)에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고 2년만에 성균관교수겸 관장을 지낼 정도로 수재였다.

선생은 1905년 의정부참찬 당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황제에게 상소를 올리면서 경복궁 앞에서 땅에 머리를 찧으며 국권회복을 위해 총궐기하자고 호소했던 인물이다. 이후 일제에 의해 국권이 넘어가자 사직해 실업자가 된 선생은 이동녕 등과 함께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을 떠났다. 그가 연해주와 만주지역에 주목한 것은 그곳이 일찍부터 많은 조선인들에 의해 개간되고 정착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만주의 용정지역은 연해주 못지않게 많은 조선인이 살고 있는 곳이었고 조선의 영토임에도 일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1906년 여름 용정에 온 이상설은 인재양성이야 말로 국권회복의 지름길임을 알고 그해 8월 우리나라 국외민족교육의 전형이 된 서전서숙을 세우고 스스로 교장이 된다. 

이후 선생의 동료였던 이회영형제가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물론 이후 용정의 최고지도자로 부각되는 김약연선생의 명동학교, 대성중학교, 용정중학교, 동흥중학교 등 모든 학교가 서전서숙의 학교운영과 커리큘럼을 계승한다.

이 지역 민족학교들은 용정지역의 조선청년들뿐만이 아닌 경기도지역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로 찾아온 청년들에게 민족정신과 항일의식을 키우는 항일해방운동의 근거지로 자리 잡았으며 1920년대 맑스-레닌주의가 교원들과 학생들사이 전해지면서 진보주의자들의 요람이 된다.

이상설선생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헤이그밀사사건이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정사에 이상설, 부사로는 법률가인 평리원검사 이준을 파견했다. 여기에 더불어 전러시아공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을 통역으로 합류시켰다. 이위종은 프랑스 생시르군사학교출신으로 러시아어, 영어, 불어에 능통한 인물로 언어의 귀재다. 

6월25일 이들은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일본과 동맹국인 영국의 방해로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이위종은 회의에 참여한 나라들의 외교관들을 상대로 유인물을 만들어 설명했고 또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하는 문서를 번역해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활동이 조금씩 알려지자 서양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언론에 보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밀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이그만국평화회의는 일제의 조선침략에 대한 부당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분노한 이준열사는 현장에서 분사한다. 이상설의 통곡소리가 밀사들이 묵었던 숙소밖에서도 크게 들렸다고 당시 외신은 기록했다고 한다.

해방에 대한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무자비한 일제의 탄압을 뚫고 민족의식과 문화를 지켜가며 기어이 광복을 맞이한 우리 민족은 해방과 동시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에 의해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빛을 회복하기는커녕, 1945년 8월15일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분단돼 광복70주년과 분단 70년을 함께 맞은 2015년, 이 억울하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울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할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전 일장기가 내려간 그 건물에 누구의 깃발이 올라갔는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를. 윤동주시인의 서시가 이토록 심금을 울린적이 또 있었던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를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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