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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통일국제포럼②] 통일이 안될 것 같아도 항상 준비해야 ... 키프러스분단과 코리아분단
  • 21세기민족일보
    2016.06.15 21:47:18

  • 6.14화 전쟁과 분단의 근원 

    1500-1800 키프러스분단과 코리아분단

    발표자 : 크리썽티 테하폰토스

    토론자 : 모히스 쿠기에흐만, 클라우디아 하이트, 응우옌 닥 누마이, 데렉 포드, 이천재, 김효진

    사회자 : 김정희


    6월14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린 평화와통일을위한국제포럼 첫째날 두번째토론으로 <키프러스분단과 코리아분단>을 주제로 외세에 의해 분단된 키프러스와 코리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분단해소방안을 논했다. 


    크리썽티 테하폰토스 키프러스평화운동가의 발표를 시작으로 클라우디아 하이트 독일좌파당 집행위원, 응우옌 닥 누마이 베트남역사학자, 데렉 포드 전쟁과인종차별반대즉각행동연합(ANSWER Coalition)대변인, 모히스 쿠기에흐만 프랑스역사학자, 이천재 범민련남측본부고문, 김효진 한대련전간부가 토론에 참여했다. 김정희 코리아연대전공동대표가 사회를 맡았다. 


    많은 침략과 지배를 받아온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러스 


    키프러스는 지중해동부에 있는 섬나라로, 기원전 9000년경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이뤄온 역사 깊은 나라이다. 그러나 남유럽과 중동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역사속에서 많은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1차세계대전직후부터 82년간 영국의 식민지배아래 있었고 1960년에 독립하게 된다. 이후 키프로스공화국이 됐으나, 국가운영과 헌법시행을 둘러싸고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들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양쪽주민들이 대립과 갈등이 깊어지는 와중에 그리스군부가 키프러스를 그리스에 합병하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어 터키군도 군대를 보내며 내전이 일어나고 결국 1974년에 그리스령과 터키령, 남과 북으로 갈라서게 된다.


    <영국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키프러스분단>


    발표를 맡은 키프러스출신의 평화활동가 크리썽티 테하폰토스가 먼저 키프러스의 분단과정을 설명했다. 테하폰토스는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키프러스가 분단됐다.>며 영국의 성별, 계급·계층, 물적·정신적 분열 전략을 비판했다. 그는 <영국의 식민지상태에서 키프러스인 모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공산당이든 어떤 당이든 함께 싸웠는데 1960년까지도 영국은 우리의 독립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 상황에서 영국은 키프러스에 군사기지건설을 추진했다. 식민지국가였던 나라에 대해서 보증을 서주는 일종의 큰 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영국이라는 것이었다.>며 <식민지땅을 군사기지화 하는 와중에도 단일한 독립투쟁은 진행중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키프러스는 인근국가인 아르메니아인과 레바논인, 라틴계, 가톨릭천주교인, 터키계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었고 3번의 내부충돌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식민지하에서 마치 동물처럼 취급당했고 약탈과 침략으로 고통받아 함께 맞섰는데 상황이 바뀌어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졌다. 영국이 터키계, 그리스계, 라틴계, 아르마니아인 등 다양한 커뮤니티로 키프러스를 분열했고 63년부터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 1974년엔 3번의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그리스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리스의 합병을 추진했고 터키계 역시 터키와의 합병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유엔결의안은 영구분단안, 아난플랜 거부> 

     

    1974이후 키프러스안정화를 목표로 회담이 이뤄졌고 <외세개입 없는 독립>이란 유엔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코피 아난 유엔전사무총장의 아난플랜은 키프러스의 유럽연합가입을 위해 가결을 압박했지만 영구적 분단을 거부하는 국민들은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투표에서는 아난플랜을 거부했다. 우리나라를 영구적으로 분단하는 안을 거부한 것이다. 플랜자체로는 분단을 추구하는 것이면서 말로는 통일이라고 한다. 평화구축의 우산이라고 하는데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되묻고 터키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터키는 가장 중요한 관련국이면서 묵묵부답으로 응수했다. 즉 북키프러스는 점령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단일 역사, 문화, 종교를 지닌 키프러스는 1980~1990년대에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가 개입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북키프러스와 남키프러스는 오랜 시간동안 분단됐고 북쪽은 터키군이 점령, 남쪽은 영국군이 주둔하는 상황이 됐다. 


    <분단, 개별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맥락으로 이해해야>


    끝으로 테하폰토스는 <분단을 개별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단이라는 것은 단순히 코리아의 분단, 키프러스의 분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고 역사가 흘러가고 왜곡되고 있다. 단순히 커뮤니티,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국제적 문제로서 인식돼야 하고 우리 자원에 대한 지배와 착취라는 문제와 연결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고 당부했다. 


    또 <키프러스도 마찬가지고 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지정학적인 근본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걸려있는 것이 굉장히 크다. 지상뿐만 아니라 해저에 묻혀 있는 천연자원들에 대한 경제적인 문제도 걸려있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고 천연자원의 부를 우리 스스로 주장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것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으면 조금 더 행복하고 부강한 국가와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지정학적 요인과 천연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키프러스분단은 전세계적인 문제>


    이어 응우옌 닥 누마이 베트남역사학자가 토론을 이어갔다. 누마이는 <분단이라는 것은 국제적 사안>이라며 <키프러스의 분단이라는 것은 유럽을 포함한 지중해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단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세계 강대국의 머릿속에 처음부터 들어있던 것이고 이들이 계속 우리를 분단으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북키프러스, 남키프러스, 북코리아, 남코리아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하나되는 국가 이것이 중요하다. 베트남에서는 결코 이 분단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베트남영토안에 외세간섭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프러스국민을 보호하는 <누군가>는 필요하지 않다.>며 외세간섭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언급하며 <전쟁에서 긴장감을 미국은 어떻게든 활용해서 그들의 무기를 계속 소진하려 했지만 스톡홀름에서 모든 것이 멈춰졌다.>며 <우리는 평화를 통해 전쟁과 분단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분단된 상황에서도 민간접촉은 가능>


    이어 발표한 클라우디아 하이트 독일좌파당집행위원은 <독일의 분단과 키프로스와 코리아 분단은 원인이 다르다.>며 <포럼의 포스터사진은 1924년 독일에서 그려진 그림으로 더이상 전쟁은 안된다고 외치는 내용이다. 독일은 1924년이후 여러나라를 침략했고 그 결과 분단이 됐다. 코리아, 키프러스 분단과는 조금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독과 서독은 문화, 언어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친척들이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한 왕래가 가능했다. 때문에 민간차원에서의 접촉은 지속됐다. 동독과 서독에서만 방송되는 라디오, TV가 있기는 했지만 들을 수 있었다.>며 <1990년이후 여러가지 어려움과 실수가 있었지만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이트는 분단원인에서 지정학적 이유도 짚으며 <분단국가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게 되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나라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기지를 설치한다고 정당화를 한다.>고 말했다. 또 <만약 북코리아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미국은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며 <북코리아 위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하며 군사적 힘을 코리아반도에 집중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두가지측면을 모두 고려하면서 분단극복을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독일주둔미군, 유럽에 새로운 분단 만들어> 


    계속해서 독일분단의 유산도 전했다. 그는 <미군이 아직 독일에 주둔한다.>며 <미군, 독일군, 폴란드군 등 3만여명이 러시아국경지대에서 군사훈련을 해 유럽에 새로운 분단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적을 상정하고 군사훈련에 하는 것에 반대해 독일이 분열 혹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독일 암스테르미군기지 반대글귀가 쓰인 스카프를 펼쳐보인 그는 반드시 독일에서 미군기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프러스분단은 터키와 유럽연합간의 긴장관계에서 비롯> 


    이어 미국의 반전단체 앤서(ANSWER)대변인 데렉 포드가 발언했다. 포드는 키프러스분단의 국제적 맥락과 역사를 짚었다. 그는 키프러스분단이 터키와 그리스간 긴장관계가 아니라 터키와 유럽연합간의 긴장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유럽제국주의열강은 1884년 아프리카에 지도를 자로 재 나눴고 1902년에는 에디오피아외에 모두 식민지로 만들었다. 1885년에서 1954년까지 제국주의열강간의 경쟁시기에 남미, 아시아는 식민지로 초토화가 됐다. 1945년이후 영국, 독일, 일본의 제국주의시스템이 붕괴하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대두했다. 이 시기는 제국주의블록과 프롤레타리아기반의 국가, 공산주의 또는 민족주의 국가블록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일극체제이후 브릭스(BRICS) 등 다양한 블록이 나타났다. 이 국가들이 미제국주의에 대한 견제세력이 된 상황이다. 쿠바가 이로써 생존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들의 개발도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키프러스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투쟁은 터키와 유럽연합사이의 분쟁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지금의 시대는 다극체제의 세상으로 오히려 여러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봤다. 


    반면 모히스 쿠기에흐만은 냉전시대의 충돌이 아닌 한국가내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간의 충돌을 더 심각한 문제로 봤다. 쿠기에흐만은 <지금의 우리 세계는 과거 냉전당시 세계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냉전당시는 두사회시스템간의 충돌이었는데 두개의 시스템간의 충돌은 모든 자본주의국가내에도 존재하는 충돌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간의 충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낙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레닌의 제국주의라는 것은 이런 쪽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주의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모든 자본주의국가가 발전한다고 하면 이들은 본질적으로 미래에는 제국주의국가가 돼있다. 예를 들어 세계분열에 참여하거나 여러 국제적인 연결고리를 통하는 식으로 제국주의적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비핵화는 중요> 


    계속해서 <지금은 새로운 제국주의강대국이 나타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제국주의강대국이 새로운 형태의 세계의 분열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기존 강대국은 자기들의 이익을 고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 새로운 제국주의강대국들이 부상한다면 이것이 바로 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핵무기, 핵폭탄이 공격의 목적이든 방어의 목적이든 어쨌든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단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시스템화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 비핵화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945년 코리아에는 미제국주의가 있었는데 코리아뿐만 아니라 여러지역으로 퍼져 있었다. 미제는 일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이 목에 가시가 박힌 것 같은 느낌이다. 역학관계 때문에 공산주의가 주도하는 북코리아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미국은 아시아지역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갔다.>고 분석했다. 


    <남코리아에 대한 미국의 점령은 아시아전역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미국의 야심>


    이어 <이런 상황에서 남코리아에 대한 미국의 점령문제는 굉장히 특이한 성격을 띄게 된다. 단순히 지역의 자원을 컨트롤하는 개념을 넘어서서 군사적 개입을 통해 아시아전역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미국의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당연히 공산주의를 배척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미국이 얼마전에 패전한 강대국 일본을 컨트롤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일본이 미국과 함께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본은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함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중요한 문제에서는 미국에 이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코리아반도에 주둔하는 이유가 뭘까. 미국이 있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가 가로막고 있다라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본다면 키프러스와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썽티가 키프러스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줬다. 천연자원, 천연가스 등이 있다고 말해줬는데 사실은 1964년에 영국인들이 키프러스에 한 짓은 프랑스인들이 레바논에 한 짓과 같다. 그런 헌법을 제공한다고 하면서 프랑스제국주의가 억압을 가했던 것이다.>고 지적했다. 


    <제국주의열강에 대한 투쟁은 필수불가결한 것> 


    쿠기에흐만은 <오늘날 키프러스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계획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마찬가지다.>며<남코리아에서도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급격히 안좋아져서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열강들간의 서로의 경쟁이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한번 문제가 일어나면 멈출줄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평화와 통일, 그리고 국제안보를 위한 투쟁을 현재 안좋아진 상황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절대 떨어뜨릴 수 없다. 이 두가지는 같이 가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화주의담론 여러가지 것들이 많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 투쟁을 멈추면 죽음으로 치닫기 때문에 이 투쟁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단된 키프러스의 그린라인은 왕래가 가능>


    김효진 한대련전간부가 다음 토론을 이어갔다. 김효진활동가는 키프러스방문경험을 이야기하며 키프러스와 코리아 분단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했다. 그는 남코리아는 3.8선이 있어 왕래가 완전히 단절된 반면 키프러스는 그린라인이란 일정한 공간은 여권만 보여주면 왕래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두나라 모두 외세에 의해 분단됐고 그 분단이 지금까지 이어져 외세개입과 지배, 제국주의의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며 <코리아는 그 정도가 더 심해 지금도 서울한복판에는 주남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탄저균, 보튤리눔, 지카바이러스 등 각종 생화학시험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고 비판했다.


    덧붙여 코리아에서 미군의 부정적 역할을 지적하며 남북간대화와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미군이 떠나지 않으면 사실상 통일이 이뤄질 수 없다.>며 <6.13은 효순이 미선이라는 두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날이고 6.15는 남북대표들이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면서 평화를 만들자고 약속한 날이다.>고 전했다. 이어 <코리아와 키프러스의 운명도 마찬가지>라며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체제로 갈 것인지>를 물었다. 


    <북의 군사적 공세는 현상을 해체하는 과정>


    이천재 범민련남측본부고문이 마지막 토론을 이어갔다. 이천재고문은 국제관계에서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과 현상을 해체해가는 것을 설명했다. 이고문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현상동결이 지금 해체정세로 발전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며 북의 인공위성발사, 수소탄시험 등이 현상을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권력자들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지금 답답한 것은 권력을 쥔 사람들의 무지와 완고함>이라며 <사실 우리가 분단된 것이 비극이지만 그보다 더 큰 비극은 분단과 대결 말고 이것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평화를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 지금 권력을 장악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비판했다.


    발표가 끝나고 패널간, 청중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김효진 한대련전간부는 크리썽티 테하폰토스에게 키프러스분단배경에 대해 구체적 설명과 키프러 민중이 생각하는 통일방안을 묻고 클라우디아 하이트에게 독일의 통일에서 코리아가 주목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1974년이후 매일 통일에 대해 생각한다>


    이에 테하폰토스는 영국군주둔으로 분열이 강화된 과정을 설명하며 지속적인 만남만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 전했다. 그는 <불과 15년전만 해도 남쪽 영국군사기지에 가면 헌법도 다른 영국의 법이 통용돼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남키프러스와 북키프러스가 해외에서도 꾸준히 만나왔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유로운 이동이 허락된 이후 실종자위원회를 만들고 그리스계키프러스, 터키계키프러스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언어 또한 주의했다고 한다. 이어 <우리는 1974년이후 매일 통일에 대해 생각한다.>며 <정부는 우리와 입장이 다르니 민중간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이 안될 것 같아도 항상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


    하이트는 독일통일의 경험을 들려주며 문화적 교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독에 살던 어린 시절에 교회행사를 통해 동독에 갔는데 그때 동독에 대한 여러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 문화적 교류를 계속 조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통일이 안될 것 같아도 항상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이트에 따르면 동독의 경우 국영, 공영기업이나 자산들이 있었는데 통일이후에 과연 이런 자산들이 해체돼야 할 것인가 사영화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실제 통일된 2~3년 이후에는 이 우려가 현실이 됐다. 대중교통, 철도, 에너지 등의 부문이 분할되기도 하고 외국기업에 팔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산업적 기반이 파괴됐고 이것은 심각한 실업증가로 이어졌다. 즉 <양측 모두가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테하폰토스는 마지막으로 <분단이란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땅에 적이 함께 사는 것>이라며 <적이 단순히 군사적 적이 아니라 경제, 사회, 정치적인 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국가만이 특징으로 <주변국의 군사적 기지화>도 들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압력으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프랑스의 코르시카섬에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이와 같이 나토차원에서 그리스섬의 군사기지를 만든다는 전략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분단국가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핵무기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평화를 위해 그것이 좋다면 갖지 않을 이유도 없다.>며 <물론 핵무기를 반대하지만 옆나라인 핵강국 이스라엘이 조금만 공격하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분단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인 모든 것들이 상당히 중요성을 띈다.>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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